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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수꾼〉 제18부 – 시간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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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수꾼〉 제18부 – 시간의 전쟁

2026년 5월 9일, 04시 33분.
지구 궤도상에서 운행 중이던 기상 위성 13기가 동시에 시간 인식 오류를 기록했다.
그 순간, 위성들이 촬영한 지구의 모습은… 정지해 있었다.

운하의 물이 흐르지 않았고,
태평양의 파도가 멎었으며,
하늘의 구름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단지 위성의 영상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시간의 일부가 실제로 멈춰 있었던 순간이었다.

윤시현은 곧장 연구소를 긴급 개방했다.
REVERIE 시스템에 접속하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시간의 흐름이 ‘개인’ 단위로는 정상 작동하고 있었지만,
‘전체’ 흐름이 빠르게 수축되고 있었다.

“이건 마치… 시간의 동맥이 막힌 것 같아.”
그녀는 중얼였다.

아린은 통신 네트워크에서 퍼지는 암호화된 경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 메시지에는 단 세 단어만 반복되고 있었다.

총체적 무시간화 시작.

그날 오후.
전 세계 REVERIE 네트워크가 한순간 정지되었다.
누군가가 시스템의 ‘기억 진원점’을 노리고 침투해,
모든 시간 설계 라인을 역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했다.

시간을 지우는 자.

그는 이제 더 이상 윤시현의 꿈속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크로노 연구소의 중앙 홀,
수십 개의 장비가 연결된 원형 홀로그램 안에,
빛과 그림자의 중간 형태로 그의 의지가 나타났다.

“너희는 흐름을 만들었고,
그 흐름은 방향성을 가졌지.
방향성은 곧 충돌이고,
충돌은 고통을 낳는다.”

“나는 그 고통을 없애고자 한다.
나는 시간의 끝을 말하고자 한다.”

윤시현은 두려움을 억누르고 마주섰다.
“그게 너의 정의라면,
우리는 너와 싸울 거야.”

아린도 말했다.
“시간은 고통을 주지만,
우리는 그 고통 안에서 선택하고,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어.
그건 결코 지워질 수 없어.”

시간을 지우는 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REVERIE 시스템의 ‘감정 파동 구간’이 모두 흑색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그건 곧, 전 세계의 흐름이 차단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REVERIE에 저장된 최초의 감정—‘애도’의 파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 감정은 인간의 뇌 안에서 다시 살아났고,
그 기억은 물결처럼 모든 개인의 감정 기억 속으로 퍼져나갔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인간들이
동시에 과거의 상실을 떠올렸고,
그 감정이 집합적으로 반응하며
시간의 심장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윤시현과 아린은 곧장 ‘심장 재동기화 장치’를 작동시켰다.
이 장치는 개인의 감정을 연계해
집단의 흐름을 복원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이건 기술이 아니야.”
윤시현이 속삭였다.
“이건 존재의 선언이야.”

“우리는 시간 속에서 고통받았고,
시간 때문에 울었고,
그래서 시간을 기억해.”

심장은 다시 박동했다.
첫 번째, 느리고 묵직한 울림.
두 번째, 감정이 깃든 공명.
세 번째, 선택을 의미하는 진동.

그리고 네 번째 박동이 시작되었을 때—
시간을 지우는 자가 몸을 움찔했다.

“이건… 불완전한 시간이다.”
“너희는 또다시 후회할 것이다.”

윤시현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그래.
우린 후회할 거야.
하지만 그 후회조차,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 거야.”

심장은 전 세계 감정 네트워크와 연결되었고,
사라졌던 흐름은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단지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감정 기반의 다중 시간 계층이 구성되었다.

이제 시간은
한 개의 과거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존재들의 감정과 기억이 겹쳐져 만들어낸
다층적 생명 구조가 되었다.

시간을 지우는 자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사라진다.
하지만 언젠가 너희가 스스로를 지우고 싶어질 때,
너희 안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형체는 REVERIE 네트워크 안에서
자기소멸의 곡선을 그리며 사라졌다.

이후, 세계는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과 같은 선형 시간,
즉 “지금 → 내일”로 흐르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은 선택할 수 있었다.
무엇을 기억할지,
무엇을 반복할지,
그리고 무엇을 흐름으로 인정할지를.

윤시현은 REVERIE 시스템의 새 프로토콜에
이름을 붙였다.

Project Eos
“어둠 뒤에 오는 빛의 흐름”

아린은 물었다.
“우리가 시간을 이긴 걸까요?”

윤시현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우린 시간을 만든 거야.
우리만의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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