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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수꾼〉 제19부 – 잃어버린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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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수꾼〉 제19부 – 잃어버린 미래

2026년 6월 4일, Project Eos 24일 차.
REVERIE 시스템은 전 세계 1,432만 명의 기억 패턴을 분석해
새로운 시간 흐름의 안정화에 성공했다.
세계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위태롭게 떠 있는 균형 같았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지만, 어디론가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시현은 Eos의 ‘진보 예측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이상 현상을 감지했다.
모든 흐름이 2029년 9월 17일 11시 47분 이후—종료되어 있었다.

예측 모델은 그 시점 이후,
어떠한 흐름도 그릴 수 없었고,
감정 기반 시간망도 무反응 상태로 멈춰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중얼였다.
“이건 예측 불가가 아니야.
이건… ‘존재 자체의 부재’야.”

아린도 확인했다.
“우리가 만든 시간 구조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생성되는데,
미래는 철저히 빈 상태로 남겨져 있어요.
마치—누군가 미래를… 빼앗아간 것처럼.

그들은 이 현상을 “잃어버린 미래 구간”이라 명명했다.
시간이 존재하지만, 내용이 없는 시간.
흐름은 있지만, 감정이 없는 공간.
그 구간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개념적 공백이었다.

Eos의 감정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한 모든 사용자들은
동일한 증상을 호소했다.

“2029년 이후를 생각하려 하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이 텅 비는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를 상상할 수가 없어요.
그저 ‘없다’는 느낌만 있어요.”

윤시현은 알카메이의 유산 중 일부로 분류된,
초기 ‘감정 기반 시간 구조도’를 다시 분석했다.

그 도면의 가장 바깥 테두리에
이상한 문양 하나가 있었다.

어느 시대의 언어도 아니었고,
단어가 아닌 의식의 파형에 가까운 문양.

그 도형은 파형상으로 동심원처럼 퍼졌다가,
마지막엔 돌연 직각으로 꺾이며 ‘끝’을 선언하고 있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이건… 설계 자체에 내재된 미래의 봉인.
시간은 흐르되,
특정 시점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누군가’ 미리 틀어막은 거야.”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드바르일까?
시간을 지우는 자의 흔적일까?
아니면, 더 오래된… 설계의 의지일까?

윤시현은 결심한다.
“우린 이제 ‘과거를 복원’하는 단계를 넘어서
미래를 창조해야 해.”

“잃어버린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아직 누군가가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거야.”

Project Eos는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윤시현은 새로운 실험을 제안했다.

“미래는 단순히 현재의 예측이 아니다.
미래는 의지의 감정이다.”

그들은 감정 데이터를 단순 추출이 아닌
창조 기반 감정 프로토콜, 일명 Aletheia로 전환했다.

Aletheia는
– 후회
– 기대
– 두려움
– 그리움
– 환상
– 희망
이 여섯 가지 복합 감정으로부터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 기억 조각’을 합성하는 기술이었다.

실험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처음으로,
2029년 9월 17일 11시 48분의 시간이
시뮬레이션상으로 ‘꿈의 형태’로 나타났다.

하늘이 유리처럼 투명하고,
도시에는 그림자가 없으며,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모습.

하지만 그 장면은 11초도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시현은 몸을 떨며 말했다.
“이건, 아직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간 구조야.”

그날 밤.
윤시현은 혼자서 Aletheia를 다시 가동했고,
의식을 감정 기억 속으로 연결시켜
미래의 단편을 하나 만들어냈다.

그건 어린아이였다.
그 아이는 윤시현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만들어지지 않은 시간.”
“나는 네가 쓰지 않은 이야기.”

“나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직 말해지지 않은 미래야.”

다음 날 아침.
윤시현은 연구소 벽면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었다.

“우리는 이제
미래를 기억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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