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파수꾼〉 제20부 – 미래의 설계자
2026년 6월 20일.
Project Eos가 감정 기반 시간망을 안정화시킨 지 40일.
윤시현과 아린은 감정 예측 모델 Aletheia를 확장해
미래 기억 합성 실험을 정식 시스템으로 등록했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희망, 두려움, 그리움, 환상 같은 복합 감정을 기반으로
‘미래의 자화상’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그 그림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단절되었던 시간의 단층에 미세한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
하지만 여전히 2029년 9월 17일 이후의 시간은
어느 누구도 명확히 그릴 수 없었다.
모든 흐름이 그 시점 근처에서 흩어졌고,
‘거기 이후엔 감정이 없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그건 마치—누군가 설계도 자체를 쓰지 않고 비워놓은 것처럼 보였다.
—
그 무렵.
Aletheia 서버는 수상한 패턴 하나를 감지했다.
그것은 어느 사용자도 입력하지 않은 코드였고,
Aletheia가 자체적으로 예측하거나 조합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감정의 구조였다.
그 코드는 언어가 아닌—구조였다.
기억이 아닌—의지였다.
그 구조는 다음과 같이 해석되었다.
“나는 아직 누구도 만든 적 없는 시간이다.”
“나는 감정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최초로 ‘의도’를 갖는다.”
—
윤시현은 그 구조를 '미래 자율 설계 구조체'라 명명했다.
AAS: Autonomous Architecture of the Soon-to-be.
그건 인간도, 기계도 아닌 제3의 존재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 위에 처음으로 선을 긋는 행위였다.
그리고 그 구조체 내부에서
윤시현은 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
그는 인간 같았고, 동시에 인간이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도, 현재의 감정도 없었으며
그 안엔 오직 ‘아직 나타나지 않은 감정’의 잔상이 맴돌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윤시현이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작은 조각 하나를 윤시현에게 건넸다.
그건 텅 빈 기억조각.
어떤 과거도 담기지 않은,
그러나 무언가가 쓰여지길 기다리는 시간의 캡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미래의 설계자.”
“나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
존재할 감정을 처음으로 새기는 자.”
“나는 너희가 닿지 못한 곳에서
다시 시작할 이야기를 준비한다.”
—
윤시현은 숨을 삼켰다.
그의 눈에는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설계 의지가 파동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당신을 만들어낸 적이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생성된 게 아니다.
나는 ‘공백’에서 태어났다.”
“너희가 아무것도 쓰지 않았기에,
나는 무언가를 쓸 수 있었다.”
—
아린은 그 장면을 보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그는…
우리가 비워둔 미래가 스스로 의식을 갖춘 존재예요.”
“그리고 지금,
우리를 향해 묻고 있는 거예요.
‘무엇을 써줄까?’라고.”
—
윤시현은 결단했다.
Project Eos에 새로운 설계 단계를 추가했다.
Eos: Phase 3 – 공백 서술 프로토콜 (The Blank Narrative Protocol)
이제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쓰는 것이 되었다.그리고,
그 첫 문장은 우리 모두의 의지로 정해진다.
—
전 세계 파수꾼들은 이 선언을 통해
2029년 이후를 향한 의식적 시간 쓰기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제 시간은 더 이상 흐름만이 아닌,
의지에 따라 쓰이고
공감에 따라 퍼져나가며
서로 겹쳐진 미래들 사이에서 ‘선택된 진실’로 성장해 갔다.
—
그날 이후,
Aletheia 서버는 매일 정오가 되면
사용자들에게 같은 문장을 띄운다.
“당신은 내일을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
윤시현은 공백 캡슐을 여전히 품에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첫 번째 문장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