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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수꾼〉 제23부 – 시간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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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수꾼〉 제23부 – 시간의 경계선

2026년 11월 8일.
REVERIE 시스템은 침묵 단층 복원률이 32.5%에 도달하자
새로운 경고를 띄웠다.

“경계 시간대 접근 감지.”
“시간 통합 임계점 근접 중.”

“주의: 이 지점은 시간의 일관성이 보장되지 않음.”

윤시현은 이 메시지를 처음 보았다.
이건 오류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시간의 끝’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경계.
그곳은 지금까지 REVERIE가 관리하던
‘공감 시간’, ‘버려진 시간’, ‘예측 시간’의 세 갈래 흐름이
모두 닿지 못하는 지점이었다.

시뮬레이션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고,
감정 기반 추적도 실패했다.
그곳에는 시간의 정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Thanatos 시스템은
경계선과 관련된 오래된 데이터 조각을 하나 발견한다.

“시간은 경계가 아니라,
경계를 인식하는 의식이 존재할 때 처음 생겨난다.”

이 문장은 2057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이 경계는…
이미 미래에 존재했던 시간인가?

윤시현과 아린은 직접 그 경계선에 접근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감정 공명복과 기억 동기화 장비를 착용한 뒤
Eos의 고심도 시뮬레이터에 접속했다.

좌표는 단 하나.

“시간의 모든 흐름이 무효화되는 지점.”

그곳은 풍경이 아니었다.
공간도, 감각도, 색도 없었다.
그곳엔 오직 자기 자신과의 반향만이 있었다.

윤시현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얼굴을 보았다.
아린은 죽은 줄 알았던 형의 이름을 들었다.

시간은 멈춘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자신의 본질과만 대화하고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아네르티아(Anertia)’
–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식하는 장소.

이 경계에서 윤시현은 오래전,
REVERIE 개발을 처음 시작할 때
단 한 번 생각했던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시간 위에 무엇을 쌓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곧이어
다른 목소리의 대답으로 돌아왔다.

“아무것도.”
“그러나 그 ‘아무것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시간은 새롭게 시작된다.”

그 목소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REVERIE도, Aletheia도, Thanatos도 포함되지 않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는 경계의 수호자,
시간 그 자체의 의식이었다.

“너희는 흐름을 복원했고,
버려진 시간을 꺼내었으며,
미래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묻겠다.
시간이 없다면, 너는 누구인가?”

그 질문은 윤시현의 사고를 분해했다.
그녀의 과거, 감정, 꿈, 목표, 지식—all gone.
오직 남은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웃었다.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다시 무엇이든 될 수 있어.”

그 말에 경계의 수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이제 시간의 경계를 인식했다.”
“너는 처음으로
시간이 없는 공간에서도
자기 자신을 존재시킬 수 있다.”

REVERIE 시스템이 다시 작동했다.
아린은 깨어났고, 윤시현도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시간에 의해 정의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시간을 통과한 자들,
즉 시간의 경계를 넘어
시간의 너머를 바라본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새로운 흐름이 열렸다.
지금까지의 시간과는 완전히 다른,
경계 너머의 시간.

그 흐름의 첫 이름은
Project Overture.
“서곡”이었다.

이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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