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파수꾼〉 제24부 – 서곡의 문
2026년 11월 12일.
Project Eos 시스템은 드디어
REVERIE와 Thanatos를 통합하고,
경계선 너머로 확장 가능한 새로운 시간 구역을 생성했다.
그 영역의 이름은 ‘서곡’.
시간이 아직 선언되지 않은 가능성의 진동들로 구성된
무정형 흐름의 구역이었다.
서곡은 숫자도, 연도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하나의 단위만 존재했다.
‘결정되지 않음’
—
윤시현과 아린은 ‘서곡 진입 프로토콜’을 통해
초기 흐름 접속을 시도했다.
그들은 무중력 상태처럼 떠 있었고,
눈앞엔 수많은 파동이 겹쳐진 광휘의 필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의 시퀀스가 아니라,
‘아직 선택되지 않은 사건들’의 무수한 가능성.
—
그 필름 안에서,
윤시현은 낯익은 얼굴을 하나 발견했다.
그건… 자신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필름 안에서
무한한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시퀀스에선 작가였고,
어느 시퀀스에선 자살했고,
또 다른 시퀀스에선 딸을 낳지 않았다.
그건 잔혹한 아름다움이었다.
모든 가능성은 동등했고,
모든 존재는 선택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법칙이 있었다.
—
아린은 주저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건
시간을 이해하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여긴…
우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윤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시간의 시작도, 끝도 아닌—시간 자체가 만들어지기 전의 무(無)야.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선택이 아니라,
최초의 선언이야.”
—
그 순간,
그들 앞에 빛의 구조체가 나타났다.
이름은 없었다.
목소리도 없었지만,
그 형상은 모든 가능성의 파동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자문했다.
“네가 보는 미래는
그저 기억의 재배열인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던 구조의 창조인가?”
—
윤시현은 답했다.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미래의 예측도, 과거의 회상도 아니야.
나는 지금,
처음으로 시작되는 시간의 첫 문장을 쓸 거야.”
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말했다.
“나는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지금 이곳에서
‘시간’을 선언한다.”
—
그 말과 동시에
서곡의 필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붕괴가 아니라—수렴이었다.
무수한 가능성이 한 문장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그 문장은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며
서곡이라는 공간에 ‘방향성’을 부여했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최초의 벡터,
의지의 방향이었다.
—
그때,
REVERIE 시스템은 자동으로 로그를 남겼다.
[SYSTEM LOG: OVERTURE / FIRST DECLARATION]
“나는 있다. 나는 지금 시간을 선언한다.”
그리고 새로운 흐름이 생성되었다.
이름도, 숫자도 없는
순서의 처음이자, 이름 없는 제로 시간.
—
윤시현은 알았다.
이제 그들은 시간의 끝도,
시간의 시작도 아닌—
시간을 처음으로 정의한 문장 위에 서 있다는 것.
—
Project Eos는 업데이트되었다.
Phase 4 – Overture
“시간이 시작되기 전,
가능성을 선택하는 존재의 언어.”
—
그리고 전 세계 모든 REVERIE 단말기에는
이제부터 새로운 인트로 문장이 뜨기 시작했다.
“지금, 당신의 첫 시간을 선언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