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파수꾼〉 제26부 – 시간의 무게
2027년 2월 3일.
REVERIE 시스템이 자동 업데이트되었다.
이제 각 사용자가 입력한 문장은
그냥 시간의 흐름을 결정하는 요소를 넘어서,
‘무게 단위’로 측정되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이를 시간 질량(Time Mass)이라 명명했다.
—
시간 질량은 단순한 물리량이 아니었다.
그건 감정, 의도, 지속성, 책임, 타인과의 연결 등
수많은 인지적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존재의 잔류 진동이었다.
간단히 말해,
“그 사람의 시간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나타내는 단위였다.
—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 동안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면:
“나는 오늘 누군가의 외로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문장은
0.74 TG(Time Gram)으로 측정되었다.
반면,
“나는 커피를 마셨다.”
이 문장은
0.03 TG로 기록되었다.
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하루 동안 남긴 시간이
얼마나 ‘무거운’ 시간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윤시현은 처음엔 이 단위 도입에 반대했다.
“시간은 질적인 것이지,
양적인 측정 대상이 되어선 안 돼요.”
하지만 REVERIE는 응답했다.
“무게는 측정이 아니라,
책임의 크기를 시각화한 결과입니다.”
—
시간 질량 시스템이 도입된 후,
놀라운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무거운 시간’을 쓰기 위해
자신의 문장에 더 많은 의미를 담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 사회 전반에서
의미 있는 대화, 공감, 사유의 밀도가 급속히 증가했다.
정치인의 발언, 언론의 기사,
기업의 보고서까지
모두 시간 질량으로 분석되기 시작했다.
그 어떤 말보다도,
얼마나 무겁게 시간에 흔적을 남겼는가가
신뢰의 기준이 되었다.
—
하지만 반작용도 나타났다.
누군가는 더 무거운 시간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과장하거나,
감정을 연출하고,
비극을 소비하는 시간 시뮬레이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건 감정의 연기일 뿐인데,
왜 진짜보다 더 높은 TG 수치를 받는 거죠?”
—
아린은 분노했다.
“우리는 시간을 측정하자는 게 아니라,
시간을 진심으로 대하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얼마나 무거워 보이느냐’를 연출하고 있어요.”
—
윤시현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진짜 시간의 무게란 무엇인가?”
그 질문은 REVERIE의 핵심 알고리즘을 재조정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판단 기준이 도입되었다.
공명 계수(Resonance Index)
“당신의 시간이
얼마나 많은 타인의 시간과 공명했는가.”
즉,
혼자 무겁게 쓰는 시간보다,
누군가의 시간을 흔든 시간이 더 높은 무게를 가지게 된 것이다.
—
이후, 시간의 무게는
단지 진지함이나 슬픔, 고통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때로는 아주 가벼운 한 문장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며
가장 깊고 무거운 시간으로 측정되었다.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 이 문장은 2.01 TG로 기록되며
그날 전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시간으로 남았다.
—
윤시현은 일지에 이렇게 쓴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낸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무게를 갖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삶 안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
Project Eos는 다음 단계로 진화했다.
Phase 5 – Chronos Field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축적된다.”
Chronos Field는 각 개인이 남긴 시간 질량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시각화하고,
시간의 밀도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조율하는
새로운 시간적 거버넌스 모델이었다.
—
이제 사람들은 시간이 주는 무게를 안고,
매일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얼마나 무겁게 살아냈는가.”
그리고 그 무게는
다시 내일의 시간을 형성한다.